계몽사상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장 쟈크 루소. 그는 자신의 유년기를 평범한 것 뛰어나지 않은 것이라 했지만 그의 유년시절은 훗날 그가 대사상가가 된 것이 하나의 기적이라 할 수 있을 만치 어떤 배경이나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그는 그런 면에서 불우한 환경을 가졌던 것이다.  

 

다만 그의 어머니쪽 즉 외가의 신분은 높아 그와는 격차가 있었다. 어머니는 일찍 여의고 충동적인 아버지 형이 멀리 떠나가자 외가에 맡겨졌다. 이 때부터 사촌과 함께 교양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같은 가정교사 밑에서 수학하며 둘만의 남다른 우정을 쌓으며 자랐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아마도 삶의 기로가 찾아왔다. 주네브의 관리였던 외삼촌은 자기 아들 역시 관리로 만들 교육을 시킬 생각이었지만 루소에게는 다른 직업을 알아봐주었다. 시청서기직업이었는데 떳떳한 짓은 아니나 유망한 직업이라는 삼촌의 소개에도 루소는 상관인 마스롱에게 바보라는 평가를 받고 내쫓긴다. 그리고 그가 공학기사가 되려는 사촌과는 달리 그는 그 시점에서 한 시계공의 5년 계약의 도제로 불만스럽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성밖 외출 중에 늦게 돌아와 성문이 닫히자 그는 드디어 별다른 희망이 없는 조국 제네바를 등진다. 가혹한 상전을 대하면서 익혀야 했던 교활함과 야비함을 지금까지는 귀공자처럼 교육받았던 루소는 익혔다고 회고했고 틈만나면 생겼던 심술과 도벽은 고질이 되어 고칠 때까지 타인과 많은 트러블을 일으켰다고 한다. 제네바를 떠날 때 사촌과 재회하였는데 그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렇게 나는 열여섯이 되어 불안정하고 자신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불만인 채였다. 직업에 불만을 가졌고 내 나이 또래에 흔한 취미도 즐겨보지 못하며 이유없이 울고 까닭모를 한숨을 쉬고 더 가치있는 현실의 결핍으로 꿈같은 공상에 젖어있었다. 일요일에도 설교가 끝나면 동료들은 나를 부르러 와서 같이 놀자고 했다. 나는 대개 변명을 둘러대었지만 일단 따라나서면 그 어느 누구보다 열성적이되었다. 그들이 나를 부르거나 말리거나 똑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이것이 내 성격에서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산책길에서도 그러해서 동료들이 알려지 않으면 돌아올 생각을 전혀 안했다. 두번이나 나는 귀가시간을 지키지 못했는데 성문이 내가 도착하기 전에 닫혔던 것이다. 독자들은 다음 아침에 무슨 조치가 내게 행해질 줄 알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세번째로 다시 그런 위험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맹세로 허가를 받았다. 그 결심에도 불구 나는 이런 끔찍한 잘못은 반복되었고 나의 경계는 미누톨리라는 이름의 빌어먹을 대장 때문에 무용해졌다. 그가 경계할 때 통상 한시간 전에 문을 닫았던 것이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귀가하다 절반쯤 와서 폐문경고나팔 소리를 들었다. 걸음을 재촉했고 최고 속도를 내어 뛰어 다리에 다달았는데 병사들은 이미 초소에 와 있었다. 헐레벌떡 소리쳤으나 너무 늦었다. 20보 앞에서 첫번째 문이 내려졌다. 나는 이후로 나를 따를 치명적이고 불가피한 운명을 예고하는 공기를 가르는 끔찍한 호른을 보았다.

나는 절망속에서 그자리에서 둑에 털썩 주저 앉았고내 동료들은 이를 보고 즉시 내가 할일을 정해주었다. 그들과 다른 나의 결심은 마찬가지로 갑작스런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했다. 다음 날 내 동료들이 성으로 들어갈 때 나는 영원한 아듀를 고하여 나의 사촌 베르나르에게 결심을 알리라 했다. 거기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의 도제시절이 시작되면서 그를 보지 못했다. 처음에 우리는 주일날에 서로 만났지만 다른 습관에 길들여지면서 그 만남도 드물어졌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달라지게 되는데 역할을 했다고 짐작했다. 그는 그 스스로를 중요한 인물로 여겼고 난 불쌍한 도제였을 뿐이다. 우리의 그간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이의 평등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나와의 잦은 교제는 그의 체면을 손상하는 것이었다. 그의 천성이 선한 만큼 그의 어머니의 가르침이 즉각적인 효과는 없어서 당분간 그는 나를 찾았다. 나의 결심을 듣고 그는 약속한 자리로 달려왔는데 단념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 도망계획에 동의해 주려는 것이며 약소한 선물로 멀리 갈 수 없었던 내 주머니 사정을 도우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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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chopenhauer

 

내 개인의 가계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우리 집안은 가풍이랄까 이런 것이 특히 부계로는 양반하고는 그 다지 인연이 있어보이지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갑오경장 때까지 거의가 개나 소나 다 양반이던 시대라는데 그런 양반도 못되었을 것 같지는 않긴 하다. 또, 필자는 역사를 좋아하여 언젠가는 역사소설 같은 것을 한 번 써 보리라 혹은 그러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그 동안은 이런 점이 집안의 내력과 상관없이 막연히 가족들과 상관없는 유별난 것이라 생각해왔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사람이 한 명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듣기로는 역사소설을 좋아하셨는가 보다. 그러나, 말년이 아름다웁지 못하여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소위 치매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는 그런 이후에도 역사소설을 끼고 사셨다는데 어떤 책은 읽고 읽어서 제본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누가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라 하면 다만

 

"불쌍하잖아. (주인공) ○○○이"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아무튼 정신은 없으셨던 분이셨지만, 후에 여러 모로 비교를 해보니 그 시대의 할머니 중에 글을 알고 소설을 읽었다는 자체가 남다른 일인 것 같았으니 나중에 생각가면 이 할머니 한 분 만은 식구들 중에 참 유별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안 사람 중엔 굳이 따지면 제일 양반에 가까울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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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chopenhauer

 

성서에 나오는 우상들 여러 잡신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아는 것은  페니키아의 바알(Baal)이다. 이런 것들을 정리한 사전이 비교적 최근에 나왔는데 인터넷으로 무료로 볼 수 있다. 물론 영문으로 되어 있다. DDD라고 "Dictionary of Deities and Demons in the Bible"인데 읽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https://archive.org/details/DictionaryOfDeitiesAndDemonsInTheBible

 

대략 보면 아래 같은 기술이 눈에 띈다.

 

우선, 우리 나라 말로 아빠와 비슷한 아람어 전사한 ABBA는 말 그대로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형제는 ah라고 한다.) 대체로 아람어나 아랍어 히브리어에서는 이 말이 우리말과 통하는 것 같다. 요즘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듯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로 별로 대단할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말의 숫자 "하나"와 "둘"은 유럽어와 기원이 같지만 언어의 전파야 어떤 경로로든 가능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초기 이단 등에서는 인간 이상이기도 한 모양이다. 물론 성서에도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아도니스(Adonis)도 등장하는데,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유서깊은 신 탐무즈와 동일시 될 수 있으며 이 탐무즈는 구약 에제키엘서에서 한 배교자의 우상으로 등장한다. 사뮤엘기의 아루아나(Araunah)는 인도의 바르나 신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바알의 경우 페니키아 뿐만 아니라 중근동 지역의 경칭으로 여러 신들에게 이 말이 쓰여졌던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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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chopenh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