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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

폭군 리처드 3세와 웨일즈 시인

 

Richard III wounds match medieval Welsh poem description

 

세익스피어의 사극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3세"의 유골이 최근 발굴되어 DNA검사까지 마쳐 그 본인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유골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그의 장애여부 척추측만증도 역시 확인되었다. 그는 역시 꼽추였다.

 

英 `폭군` 리처드3세 유골 발견 매일경제 A10면2단 2013.02.05 (화)

 

단, 이를 문학작품화한 작가는 세익스피어만이 아닌 모양으로 구토 그린(Guto'r Glyn: 여기서 구토는 Gruffudd의 애칭)이라는 웨일즈어 시인의 시 역시 실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담고 있다해서 또한 화제가 된 모양이다. 역사 기록에 폭군 리처드를 죽인 사람은 구토의 동향인인 기사(knight) "Rys ap Thomas"요 정확히 말해서 그의 종인으로 미늘창을 들고다니는 인물이 미늘창으로 그를 살해한 것이다. 구토 역시 이 동향의 기사를 따라 장미전쟁 등 여러 전장을 전전하는 군인이며 찬양시를 즐겨 쓴 시인으로 그를 위해 지은 시에 그가

 

그 멧돼지를 죽여 머리를 밀어버렸다(Lladd y baedd, eilliodd ei ben)

 

라고 적었던 것이다. 발굴 결과 단순히 면도 수준이나 바리깡으로 밀었다는 것이 아니라 두개골 표면까지 손상시킬 정도로 가죽벗겨내기를 죽은 전왕의 시신에 가했던 것이다.

 

리처드 3세하면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영국의 "실패한 세조대왕(世祖大王)"으로 알고 있다. 숙부로서 어린 조카들의 생명과 왕좌을 가로채고 즉위했다. 그러나 여기에 강력한 도전자가 있었으니 우리 역사로 말하면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그 남편 정종(鄭悰)으로 헨리 튜더(Henry Tudor)가 죽은 전왕의 딸과의 결혼으로 왕위 계승권을 획득한다. 이 헨리 튜더 역시 앞서 말한 사람들과 동향인 웨일즈 사람이었고, 브루타뉴를 거쳐 프랑스로 망명했던 그는 폭군을 타도하기 위해 제일 먼저 웨일즈에 상륙해 왔다.

 

하지만, "Rys ap Thomas"는 이미 변절한 몸으로 폭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인질로 자신의 아들까지 보낸 뒤였는데, 이번에 편을 바꿔 귀국한 헨리측에 가담해서 전장이 있을 레스터셔로 함께 진군해서 리처드 3세의 군대와 보즈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 Field) 끝에 승리하고 리처드 3세를 죽인다. 그 시신이 말에 매여 끌려져 레스터로 옮겨져 Greyfriars교회에 매장되었는데 발굴결과 성가대석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지금 지하주차장 자리라고 한다.

 

 

 

<유골 발굴 장소>

 

 

한국사로 말하자면 성공한 성삼문이 바로 시인 구토가 노래한  "Rys ap Thomas"이라는 것인데 과연 찬양받을 만한 행동을 한 셈이다. 왜 우리역사에는  "Rys ap Thomas" 같은 사람이 없었을까?

 

마침, 그를 죽인 미늘창도 마치 관우의 청룡언월도 같이 생겼다.

 

 

<폭군을 죽일 때 쓴 미늘창들. 그 중에서도 웨일즈산 미늘창이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