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만큼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제목이다. (물론 남반구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르메니아는 건국 이래 줄곧 소아시아이 동쪽에 있었던 내륙국에 가까웠고 킬리키아는 역시 소아시아반도 경계에 있지만 우리가 아는 아르메니아와는 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이 킬리키아에도 있었다.

 

 

 

고대 킬리키아 지역(붉은색)과 현 아르메니아(녹색: 고대에는 영역이 좀 더 넓었다)

 

 

7세기 역사적 아랍의 흥기 하에 빼앗겼던 킬리키아가 965년 비잔틴 제국의 니케포로스 2세(Nicephorus II Phocas)에 의해 수복되었다. 그 동안 아랍지배하의 인구 및 종교 상황을 역전시키고 제국의 변경으로서의 방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 비잔틴은 기독교국인 아르메니아인과 인근 시리아의 기독교도들의 이주를 장려하게 되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이 소아시아로 치고 들어가 아르메니아까지 이르자 이 이주 정책은 더 탄력을 받아 아르메니아 인들이 소아시아를 가로 질러 킬리키아로 밀려들었다[각주:1]. 그러나, 비잔틴의 승승장구는 다시 문약해진 아랍족을 대치한 새로운 유목민족 투르크족에 의해 주춤한다. 셀주크 투르크가 기독교 세계를 다시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때 였고 더 많은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이 박해를 피해 킬리키아를 찾았다.  

 

바그라티온 왕조(Bagratid)[각주:2]의 마지막 왕 가기크 2세(Gagik II)는 이러한 상황에서 비잔틴 궁정의 초청을 받아 오히려 영토 할양을 요구받고 유형 생활 중 암살당한다. 이 때 수행자 중의 같은 가문의 루벤(Ruben)은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을 규합해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킬리키아에 아르메니아 공국[각주:3]을 1080년 수립한다. 때마침 십자군이 일어났을 때는 재빨리 서방의 동맹이 되어 비잔틴과 투르크로 부터 나라를 지킨다. 이 나라는 몽고 침입에도 교묘한 처신으로 살아남아 1375년까지 존속되었다고 한다. 

 

십자군 원정에 대해 읽어본 사람이라면, 당시 보두앵(Baldwin) 같은 이들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나라를 빼앗다시 피해서 에뎃사공국을 만들었을 때 왜 갑자기 이 지역에 아랍인이나 무슬림들이 아닌 아르메니아인이 나오는지 궁금했을 것인데 여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듯 하다. 당시 보두앵이 이어받은 지역은 물론 독립을 유지한 킬리키아 왕국과는 별개의 아르메니아 세력이었던 것이다. 십자군운동의 직접 성과였던 이 나라는 결국 그 지지부진과 함께 100년도 안되 곧 룸술탄국(Sultanate of Rome)에 망한다. 

 

 

 

십자군 운동 중 서기 1200년의 지역 상황

 

 

 

아무튼, 이 아르메니아인들의 활동반경이 어찌나 넓었는지 예루살렘의 구시가는 네 개의 구역으로 전통적으로 나뉘었는데 그 중에 한 지구가 아르메니아 지구라고도 한다. 그들은 다른 기독교와는 다소 구분되는 아르메니아 정교를 믿는 이슬람의 관용하의 예루살렘의 두번째 규모의 기독교 공동체였다.

 

 

  1. 1045년 비잔틴제국은 아르메니아 본토를 병합하였다. [본문으로]
  2. 아르메니아 유력 가문으로 자립해 바그다드와 비잔틴에게 각기 인정을 받았다. [본문으로]
  3. 왕국으로 승격된 것은1187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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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chopenh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