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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

중국 문헌 <춘추좌전>에 나타나는 전차신

<영화 벤허의 전차신>

 

유명한 <벤허>의 전차신이라고 한다. 이 전차를 처음 발명한 지역은 유목문화의 선구라고 보는 안드로노보문화(Andronovo culture)가 꽃피웠던 우랄산맥 남쪽 초원지대에 위치했는데 비교적 피부빛이 하얀 인도-이란계의 유럽인종이 주도한 문화라고 한다. 이 문화도 훗날 신라까지 확산되어 들어온 구르간이라는 독특한 매장법을 사용했으며 여기서 인도-유럽계 민족이 확산되어 나갔다는 이른바 "구르간가설"이 인도-유럽인의 기원설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각주:1] 이 지역에서 훗날 스키타이나 키메르 같은 헤로도토스(Herodotus)의 기록에 남은 이란계의 유명한 유목만족들이 일어났다. 아무튼 대체로 그 지역에 안드로노보문화기에 구르간묘에 전차가 배장되었다고 한다. 아래가 그 확산 경로인데 곧 히타이트(Hititites)에 출현에 3인승 4륜의 경량화된 전차로 개량되었으며 힉소스의 침입으로 부터 뒤늦게 전차전을 배운 이집트와의 유명한 카데쉬전투가 전차 5천대 이상 동원된 대규모 전차전이다. 아무튼 아래 지도가 그 확산된 양상을 보여준다.

 

 

<전차의 확산>

 

 

로마제국 창궐 당시 겨우 문명권에 들어온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는 물론 그 때까지 야만으로 남았던 게르마니아(독일 등)까지도 전차문화가 확산되었고, 아시아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그리고 다른 경로로 중국까지 들어온데 비해 이 흐름은 우리나라까지 이르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중국 문헌에도 춘추전국시대에 전차로서 천자와 제후의 등급을 구분하기도 했던 기록이 있다. 이를데면 만승(萬乘)은 천자, 천승(千乘)은 제후라는 공식이 그런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도 은상시대(殷商時代)의 말기에는 무덤에서 전차가 출토된다고 한다.

 

아무튼 이 전차전은 "고대의 로망"이라 할만 해서 특히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전술적으로 기병대에 의해 대치되어 쓸모없게 된 이후로도 일종의 스포츠로서 즐겨졌으며 서로마 멸망이후에는 동로마에서 계속 즐겨졌다.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같이 인도의 <바가바드기타> 같은 유명 서사시에도 전차전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 유명한데, 찾아보니 중국에서도 이런 "고대의 로망"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바로 <춘주좌전>에서 제(齊)나라 경공(頃公)이 진(晉)나라와 전쟁을 할 때 벤허의 명장면을 방불케 할 전차신을 연출한다.[각주:2]

 

여기서 경공은 몸소 전차를 몰고 전투에 나서는데 3인승의 전차에 탄 사람 모두 귀족인 모양으로 대신 봉추보(逢丑父)가 우측에 경공이 좌측에 앉고 대부(大夫)인 병하(邴夏)가 몸소 말을 몰았다. 병하는 진(晉)의 대부 한궐(韓闕)의 전차의 모는 솜씨를 보고 "군자(君子)의 모습이 완연한" 그를 쏘라고 권하지만 군자를 쏘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며 그 왼쪽에 있는 이를 쏘았다. 후에 경공은 전쟁에서 지고 한궐에 의해 포로가 될 위기에 몰리는데 한궐 자신도 전의 일도 있고 제나라 같은 강국의 군주를 사로 잡는 것이 꺼림찍했던지 머뭇거리며 회피할 여유를 준다. 봉추보의 희생으로 경공은 도망하는데 성공하고 나중에 봉추보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진나라의 궁정은 그 마저도 석방시킨다는 다소 유교적인 미담(美談)으로 채색되어 있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의 불행한 결말과는 대비되는 해피엔딩이다. 전쟁에서 예의를 논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황당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호메로스나 바가바드 기타도 마찬가지고, 더구나 청동기와 같은 드문 금속을 쓰던 시대는 귀족의 명예가 존중되는 시대였다고 하니 그 시절에는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1. 이 구르간이 발견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동으로 유럽족이 확산되는 등 이 지역이 인구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고향이라는 설이다. 이들의 고향이 의외로 유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본문으로]
  2. <좌전> 노성공(魯成公) 2년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