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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항의 노래

무거웠던 해방 쌀짐

 

8·15의 해방 이 민족의 주권을 찾는 36년만의 해방 이 기쁨 어찌 말로 다하랴. 그러나 기쁨에 뒤질세라 무질서로 도야지도 못 잡던 동네에 이곳저곳에서 소도잡고 술도 빚고 이곳 저곳 노름꾼들은 몰리고 왜정치하에서 받은 설움을 풀기 위해 적이 생기고 싸우고 도망치고 산에 자라는 나무는 잘리고 하니 말 그대로 무법천지다.

 

농사는 수년만의 대풍이었으나 추석은 다가오는데 햇곡이 없어서 추석 맞이에 걱정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락운이 갑성이가 간다니 같이 가서 쌀 좀 구해오라는 것이다. 하루 아침 우리 세사람은 ◎이면 건○리로 향했다. 진◎산을 넘어 건○리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경인가 싶다. 집에서 찾아가라는 분 ○명섭씨를 찾아갔다. ○명섭씨는 곧 우리에게 밥을 주더니 밥을 먹는 동안 쌀을 구하여 한 사람에 쌀 서말씩을 묶어 주었다. 이 때 쌀값은 일본 돈으로 치렀다. 바로 길을 떠 오는데 짐도 무것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이면 하◎리에 오니 주막에 놀음꾼들이 우글거린다. 주막에서 소위 밀주를 배고푼 속에 술술 마시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5시경일 것이다.

 

그러나 빈 속에 술이여선지 모두 쌀짐을 지고 비실거린다. 오다가 어느 동네에서 ○수업씨 누님이 이 동네에서 막걸리 장사를 한다고 해서 내가 앞장서 술 먹고 가자고 하면서 쌀짐을 콩밭 옆에 네려놓고 주막으로 들렀다. 모두 술이 취해 있는 사람이 가서 또 술을 먹으니 어찌 될는지 몇잔 씩 먹고 내가 먼저 쌀짐으로 와서 쌀짐 하나를 콩밭에 감추고 내 짐을 메고 드러누워 있으니 두 사람이 곧 와서 짐을 찾으니 하나가 모자란다. 락운이 쌀집이 없는 것이다. 락운이는 도둑놈이 쌀가마 가져갔다고 눈이 벌겋게 야단이다. 그러나 콩밭을 뒤지다가 쌀짐을 발견하고 도둑놈이 가져 갈라고 콩밭에 감추었단다. 우리는 또 길을 떳다. 그러나 이제는 엉망이라 모두 취해서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진다. 이제부터 진◎산 큰 재를 넘어야 하는데 큰일이다.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진◎산 골짝이에 드니 작은 동네가 있다. 도저히 못가니 자고 가려고 동네 반장을 찾아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재워 달라고 하니 자기 집은 잘곳이 없으니 가르쳐 줄테니 가자고 한다. 따라가서 이 집이라고 하면서 반장은 돌아간다. 집을 들여다보니 아주머니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굽고 있었다. 우리는 들어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밤 재워달라고 하니 거절이다. 우리는 도로 나와 문깐 길까에서 쌀가마니를 메고 모두 지쳐서 아무 말없이 잠이 들었다. 얼마간 자고 깨였는지 산에서 여러 새들이 울어 댄다. 그러나 누구도 옆에 사람을 깨우지도 않는다. 그러던 중 차츰 몸이 냉기가 오고 점점 추어진다. 그래서 누가 그랬는지 하나가 소리를 내니 모두 어 추워한다. 세 사람은 일어나서 또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험한 오르막 길이다. 춥던 몸에서 또 땀이 난다.

 

진◎산을 넘어 음□리 동네 뒤에 와서야 한숨을 쉬고 누었다가 고삿길을 지나 양□리로 건느려고 하니 개울에는 물이 있고 어느 곳이 건너는 곳인지 찾을 수가 없다. 모두 지쳐서 또 잠이 들었다. 그 중 누가 잠을 깨운다. 웬 사람들이 라는 계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 개울 건느는 곳을 물으니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등잔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묻기에 이 새벽에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병환인데 양□리 의원을 모시러 가는 길이란다. 우리는 길을 걸어 알미에 이르니 날이 환하게 밝는다. 집에 오니 기진맥진 몸을 어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또 있다. 하루지나 수업씨 집으로 수업씨 매형되는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어제 해질 무렵에 우리집에 와서 술을 먹으면서 매형 누님하며 세 사람이 술이 취해서 짐을 지고 갔는데 그 사람들이 이 잔실사람이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가다가 동네에 가서 하루밤 자고 가자고 한 것을 주인 아주머니가 거절했는데 그 집에 그 날 밤 소를 도둑맞았단다. 그래서 소도둑놈은 틀림없이 그 세놈들이라고 하니 어찌 된 일이냐고 하더란다. 그래서 수업씨는 그 사람들 건물이 가서 쌀 가져왔다는 이야기 들었으나 그런 사람들 아니라고 하니 매형되는 분은 돌아갔다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리 없다 그래서 □□ 치안대에 신고하려고 □□에 가는 중 음지편 동생네 집에 들어 소도둑 맞은 이야기와 그 세사람 이야기를 하니 날짜와 시간을 서로 재여보니 음지편 작은 집은 바로 우리를 등불을 가지고 개울을 건너게 해준 의원 모시러가는 분 곳 동생이란다. 이래서 동생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은 내가 봤는데 그 사람은 아니라고 그 개울가의 그 정경을 이야기 하므로 모두 풀렸다. 만약 잘못되었다면 □□ 치안대에 잡혀가서 일시적이지만 문제가 되었다고 본다.

 

 

197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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