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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항의 노래

<고향의 노래>에 대해

 

지금은 돌아가신 어느 친척 어른이 생전에 몸소 쓰신 일종의 문학 원고를 제게 갑작스레 전해주었고, 저는 계속 보관은 해왔지만 그 분이나 저나 전혀 작가라든가 문명(文名)과는 공히 거리가 멀고 그런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따라서 잘 써진 글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습니다. 주로 당신의 감상이나 회고를 밝힌 시(詩)와 수필(隨筆)들입니다. 그 분은 평소에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을 한(恨)으로 생각하셨는데 마침 제가 집안 사람 중에는 그래도 많이 배운 편이라 제게 원고를 주신 것인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비록 대단한 문명은 없어도 인터넷에 올리면 그런대로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의 바램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비록 어느 정도의 문학성을 가진 줄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개인의 역사로는 또 볼 여지도 있지 않은가 싶어 앞으로 이곳에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분에 대해 간단히 소개드리자면 그 분은 소위 남도(南道) 출신으로 한 집안의 장남(長男)이셨습니다. 6·25 때는 지금의 삼사관학교를 나와서 참전하셨던 용사(勇士)십니다. 평생에 하고픈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한이 되셨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아서 혼란통에 장교로는 되셨지만 확실히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많으셨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가할 때 이런 글을 쓰신 이유도 아마 그와 상관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쟁 전에 전통식으로 아버지 강요로 결혼을 하셨다고 하고 아버지가 자신은 그렇게 농사짓도록 하고 둘째를 계속 공부시키기로 결정한 것을 한으로 삼아서 왜정 때 가출해서 당시 공업 붐이 일었던 함경도 어디 공장에 공짜로 먹여주고 "가르쳐준다"는 말에 거기로 갔다가 일만 죽도록 시키는 바람에 돌아온 적이 있으시답니다. 생전에는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지만 그래서 부부사이도 그렇게 좋기만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더불어 당신에게는 친자식이 없으셨죠. 이래저래 설움이 많으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본인은 국군이 되었지만 처가 쪽은 그 동네 좌익 쪽의 먼 일가 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 좌익 본가의 유족들은 사변 후에 북에서 허술한 혼란 통을 틈타 모셔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전쟁에 대해서는 용감히 싸우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군대에 있을 때 배가 고팠다는 말씀과 전투 때 무서워서 도망갔었는데 위에 적당히 둘러대서 무사히 넘어갔다며 세상은 요령이 필요하다고 하시더군요. 군대에서는 일찍 나오셔서 집안이 어려워 졌다고 하고 1960년대 쯤 상경하셨을 겁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이렇게 이 원고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군요. 몸소 순서를 매겨 묶음집을 만드셨는데 보기 좋은 순서로 역순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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