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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

로마를 처음 약탈한 브렌누스의 일화

 

 

 

<브렌누스와 카밀루스>

 

 

성서에는 한 도시의 약탈과 멸망을 "종말적 상황"에 비하는 모양인데 그런 면에서 유명한 로마의 고트족 약탈에 거의 800년이나 앞섰던 또 하나의 아비규환의 참화가 브렌누스왕이 이끄는 일군의 갈리아족의 약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는 오히려 그것이 신선한 자극이 되어 분발한 시민들이 로마를 세계적 제국으로 올려놓게 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했었다. 좌우간, 이 갈리아의 야만족왕도 고트족의 알라릭 처럼 자신의 모습을 역사에 몇 자 드러낸 모양인데, 알라릭이 그렇듯 그의 하는 말을 들어보면 무자비할 지언정 전혀 야만인 속에서 살지언정 국제관계나 각 나라의 풍속 법률에 관한 지식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달변가라고 보여지는 면이 있다. 적어도 세련된 그리스나 로마의 문명사회의 법은 몰라도 전쟁에 필요한 만국공법에 대해서는 해박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당초 그는 로마를 침공하기 보다는 그 북쪽의 에트루리아 도시 클루시움을 공격했는데 로마의 사신이 중재하러 왔을 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그 재산을 차지하는 것은 만국의 공법"이라는 논리를 써가며 더군다나 많은 인근 나라를 같은 이유로 병합해 온 로마가 간섭한 일이 아니라고 로마의 중재사절들을 물리쳤다. 그런데, 브렌누스가 칼과 창을 로마로 돌리게 된 계기는  우연한 것으로 바로 중재로 왔던 이 로마사절이 그 후에 벌어진 클루시움과 갈리아족과의 전투에 가담했던 것이 브렌누스에게 들통이 났기 때문이었다. 시력과 기억력 마저 비상했던 이 왕은 단숨에 로마사절을 전장에서 알아보고 하늘을 우러러 "세상 어떤 민족에 중재자로 와서 한 편에 붙어 싸우는 법"이 어딨느냐며 이를 로마를 약탈할 명분으로 삼았다. 끝내 그는 유피테르 신전이 있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제외한 로마를 약탈했지만 카밀루스에게 패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