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 사회

말세와 종말에 관해

 

생전에 차마 구경할 수 없을 것 같은 갖가지 몰염치와 타락이 보여질 때 종종 신들이 그런 세태를 벌하려 지구나 고대에는 한 도시를 멸망시킨다는 말이 고래로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요즘의 어수선한 분위기나 각박한 인심을 생각할 때 진정 그런 신의 징벌과 심판이 존재한다면 바로 가장 적당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성경에도 보면 예수 역시 찬란한 역사의 고대도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경고하는 장면이 복음서에 전하는 바 그의 백성들에게 그래서 "깨어있으라" 당부했다 한다. 이는 비단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하나에 국한 한 것이 아니라 달리 세계의 멸망을 그리고도 있다고도 한다. 적어도 그의 예루살렘 방문 이후 한세대 안에는 예루살렘의 성벽에 돌 하나 남김없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했으며, 그에서 "종말"은 이렇게 그려진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구세주)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라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각주:1]

 

과연 예수의 말대로 한세대 만에 로마에 반기를 들었던 댓가로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그 보화들이 약탈되어 와 로마를 재건하는데 쓰이게 되며 그리고도 약 400여년이 지난 후에는 로마 역시 세계의 수도로서의 놓게 된다. 한 편 로마제국의 멸망 전에도 그 전조이면서 야만인인 고트족의 알라릭에 의한 로마약탈 역시 예루살렘 멸망에 비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이 아닐까 한다. 이 사건의 충격이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신국론>을 쓰게 했다고도 한다. 그는 거기서 기독교가 로마를 망쳤다는 이교의 한탄에 반박해, 오히려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로마의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필연적 결과로 보고 이교들의 회개와 각성을 요구하였다 한다.

 

이에 관해서는 유명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쇠망사"를 읽다보니 마침 이 전대미문의 알라릭의 로마 약탈 소식을 다루는 대목에서도 저자가 당대의 로마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들춰내고 있는 바, 솔직히 요즘의 현실과도 오버랩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번은 우선 로마의 지도층 상류층의 사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일반민중의 생활에서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다른 희망의 탈출구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3S 산업에 열중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알라릭의 약탈 후 40여년 후 아틸라에게 로마 약탈을 단념하도록 설득하는 교황 레오 

 

 

"나태한 민중의 가장 강렬하고도 멋진 즐거움을 돋구어주는 것은 자주 개최되는 공개적인 경기와 구경거리였다. 기독교를 믿는 군주들의 경건성이 검투사의 잔혹한 격투를 억제 내지 금지했지만, 그래도 로마시민들은 여전히 대경기장을 자기들의 집이나 성묘(聖廟) 또는 공화정이 진좌(鎭座)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군중은, 미리 자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날이 밝음과 동시에 달려갔는가 하면, 근심으로 잠못이루는 한밤을 대경기장 근처에 있는 대가집 회랑현관에서 지새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맑거나 비옴에 상관하지 않고, 때로는 40만에 달하는 관중이 눈은 말이나 전차 기수에게 못박아 놓고, 머리속에서는 자기가 지지하는 측의 승리를 바라, 희망과 걱정으로 가득채우면서,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열심히 구경하는, 마치 로마 전체의 행복과 불행이 이 경기의 결과여하에 달려있기나 하듯이 열중하는 것이었다. 맹수와의 격투나 여러가지 형태의 연극 등이 연출될 때마다, 터져나오는 관중의 규환과 갈채는, 똑같이 도가 지나친 열의에서 나오는 것이었따. 이것에 비하면 근대에 각국 수도에서 상연되는 연극은 취미의 어쩌면 권선징악(權善徵惡)을 순수하고 우아하게 교육하는 교육장으로 생각해서 마땅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앗티카(Attica) 출신 천재들의 모방이상을 원하지 않았던 로마인의 비극과 희극의 뮤즈(Muse) 신들은, 공화정이 무너진 뒤에는 거의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런 지위를 실력도 없으면서 이어받은 것이, 방종한 익살광대극(farce), 유약한 음악, 게다가 훌륭한 야외극(pageantry) 등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시대부터 6세기까지, 명성을 유지한 무언극의 배우(pantominus)는, 말을 하지 않고 고대의 신들과 영웅들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이들의 숙성된 기량은 때로는 몹시 근엄한 철학자의 아래턱도 벌리게 했을 정도로, 항상 민중의 박수와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거대하고 장려한 로마의 극장은 3,000명의 여자무용수와 마찬가지로 3,000명의 가희(歌姬), 게다가 각 합창대의 지휘자들로 무대를 가득 메웠다. 그들이 향수한 민중의 호의는 대단했으므로, 결핍시대가 와서 필수요원 이외는 거의 전부가 수도로부터 추방될 때도, 공중에게 열락(悅樂)을 안겨 준 공이 크다하여, 그들은 모든 학계분야에 정통한 학자들에게까지 엄격히 적용되던 법률도 눈감아주는 특혜를 받았다."[각주:2]

 

사실 이것이 꼭 알라릭 약탈을 전후한 상황만이 아니라 제정로마 내내 있었던 풍경이었지만 기번 같은 대가 역시 하필 그 장면에서 이런 세태를 떠 올리는 왜일까?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스포츠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면서 인생의 낙을 찾는 모습과 너무 비슷해 보인다. 이것을 떠올리지 않기에는 올해도 특정 구단이 3년 우승을 했다하여 그 지역의 팬들의 흥분과 기쁨 뒤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팀의 팬들의 한숨과 눈물에 너무 익숙하다. 하필 그 시점이 정치에 대한 일반의 환멸이나 혐오가 점점 심해지는 전환점이 되고 있는 그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대한민국 정치인들도 좀 각성하고, 게임에서만 인생의 낙을 찾다 게임중독에 빠지는 사람들도 인제는 좀 돌아왔으면.

 

 

 

 

 

 

 달리 마땅히 올릴 사진이 없어서 올리는데 위 인물들이 올해 3년 연속 우승한 대구삼성 라이온즈 팀 사상의 최고의 영웅들이라 한다

 

 

 

 

  1. 이상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본문으로]
  2. 로마제국쇠망사 5, 에드워드 기번 지음, 김영진 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