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 사회

이란(Iran)이란 이름에 관하여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중고등학교 <사회과부도>를 펼쳐보면서 왜 그 전에는 없던 이란(Iran)과 이라크(Iraq)라는 국명(國名)이 20세기들어 갑자기 튀어나오는가 하는 점이었다. 조금 나이가 든 뒤에는 막연히 인도가 그랬듯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통일되었던 한 제국을 갈라놓는 과정에서 그런 이름이 생긴 급조된 이름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론만을 생각해 보면 그와는 반대인 듯이 보인다. 특히, 이란에 관해서 그 원래 명칭으로 생각해 오던 페르시아(Persia)야 말로 오히려 서양인들이 그 만큼 오래 일방적으로 붙여왔던 이름이고 이란이야 말로 오랫동안 빼앗겨왔던 나라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이란 즉 페르시아의 역사는 동방을 거의 통일한 아케메네스조 제국(Achaemenid Empire)까지 거슬러 오르며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한 후 헬레니즘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비슷한 이란계통의 파르티아(Parthia)에 의해 대신되고 다시 사산조 제국(Sasanian Empire)에 의해 부활된 것으로 생각하며 그 이후 이슬람 정복 후 그 역사 속으로 융합된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는 좀처럼 이란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우선 이란이란 이름이 최초로 실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산조 제국의 창시자 아다시르 1세(Ardashir I: 재위 서기 224-242년)의 나쉐로스탐(Naqsh-e Rustam)의 비문에서인데 왕을 "ardašīr šāhān šāh ērān (아다시르, 에란의 샤안샤[각주:1])"라고 칭하고 있으며[각주:2] 이것이 파르티아의 언어 팔레비어(Pahlavi)의 비문에서는 그와 함께 "ardašīr šāhān šāh aryān(아다시르, 아리안의 샤안샤)"로 되어 있다.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왕권을 수여받는 아다시르 1세의 대관을 그린 나쉐로스탐의 부조

 

에르나 아리나 공히 공통의 고페르시아어(Old Persian)의 아리아(Arya)라는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며 이 말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는 귀족을 의미하는 말[각주:3]로 한 때 나치와 그 전의 인종주의에 의해 더럽혀진 바로 그 단어[각주:4]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유래를 더 거슬러 오르면 인도의 이 말도 베다의 신을 숭배하고 그 문화를 따르는 민족을 말하는 단어였다. 어쨌거나, 고페르시아의 아리아는 곧 이란인들을 말한다. 이 시대에 이 아리아의 변형인 이란인은 제국의 지배종족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비문은 이란인과 비이란인을 구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아리아라는 말은 물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비문이나 사산이전의 조로아스터 문헌에도 하나의 민족명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란의 동의어로 생각되는 페르시아란 말은 어떤 유래를 가졌을까? 여러가지로 볼 때 이 페르시아란 말은 이란에 비해서는 좀더 협의의 영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일어났던 이란의 한 지역에 불과한 파르스 주에서 유래한 말로 이것이 이 이란인들의 제국을 대표하는 말로 외부세계에 더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그리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던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대체로 페르시아인 즉 이란인들이 스스로 부른 이름이라기보다는 와전된 이름이라는 것은 이른 페르시아 비문에 페르시아 대신 이란이란 말이 나타난다는데서도 드러나며 내부적으로 이란인들은 지속적으로 고대 페르시아제국을 이란 혹은 아리안으로 부르기를 선호해 왔다. 따라서 이란인들이 자신들의 본 이름을 잃어버렸다면 엄밀히 말해 그것은 외부세계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이후에도 인도유럽계통의 이란언어는 살아남았겠지만 나라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이 아리아 혹은 이란이라는 말은 서양세계에서도 일찌감찌 알려진 말이었다. 1세기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저서에도 이 종족이 페르시아, 메디아는 물론 박트리아나 속디아나까지 퍼져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에도 서구에서 이란이라는 말은 널리 쓰였다.

 

단, 이라크란 말은 그에 비해서는 좀 불분명한 것 같다. 중세엔 메소포타미아 하류를 말하는 ʿIrāq ʿArabī ("아라비아의 이라크")와 중서부 이란을 지칭하는  ʿIrāq ʿajamī ("외국의 이라크")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라크는 오늘날 이라크 북부나 서부 깊숙한 지역까지 포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이라크는 아랍어가 공식언어인 아랍국가로 아랍주의를 지지하는 다수의 수니파와 이란과 친하려는 시아파가 대립되어 있다고 한다. 이란은 1935년 이래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고 이슬람 혁명 이후로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외적으로만 페르시아였다.

 

 

 

 

 

  1. 샤안샤는 왕중왕으로 페르시아 이래 제국 지배자의 칭호. [본문으로]
  2. 3국어로 쓰인 이 비문에서 그리스어 비문은 마즈다의 봉사하는 신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ares)신성 후손 아리아인들의 왕중왕으로 되어 있다. [본문으로]
  3. 아르메니아어에서도 귀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4. 아리안 민족이란 인도유럽어족의 공통 조상으로 추정되었던 민족으로 19-20세기 인종우월주의와 함께 유행했다. 19세기들어 아일랜드어 "Éire(아일랜드인 자칭)"나 영어의 "honor(영예)"가 같은 유래를 가진 말이라는 추단으로 인도유럽어족 전체의 공통시조를 순수한 북구인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치 이후로는 그 열풍이 가라 앉아 그 의미가 다시 원래 의미로 축소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