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 적은 없는 책이다. 다만 한국 현대사 특히 민주화운동사에 적지 않은 비중의 이름을 남긴 리영희 교수의 <자유인>이라는 책을 통해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라도 하게 되었다. 사실 리교수의 경우 당시의 사정도 있으려니와 도덕적 면에서 지나치게 결벽함을 드러내며 거기에는 지나치게 완고하다고 할 만큼의 원칙과 그에 따라야 한다는 대의의식 같은 게 있어서 그런지, 자기 자랑이 좀 지나치다 싶다라 느끼는 점이 많다. 읽어보면 알 것인다. 그에 반해 여기서는 그런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적 글이 몇 편이 있는데 「30년 집필생활의 회상」이란 글이 그 중 하나로 거기서 이렇게 언급된다.

 

지난 시기의 나와 독자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가끔 입센의 <인형의 집>을 떠올리는 때가 있다. 입센은 그의 글을 통해서 봉건적 생존조건(환경)에 길들여진 젊은 영혼에서 허위·속박·전통·복종·비인간적 실체를 의식케 하였다. '노라'로 대표되는 수많은 청년·학생·남녀에게 스스로 자유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 반항의 정신을 가르쳤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반항했고, 위선과 허위와 구속의 틀(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인간해방'이다.

그런데 입센은 자신에게 상당한 원인이 있는 이 '뛰쳐나간' 젊은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의식'은 주었지만 '방법'과 성공의 '보장'을 제공치 않았기 때문이다.

'새 의식'을 갖게 된 많은 노라들은 길가에서 헤매고 있지나 않을까? 낡은 것에 반항하고 거부한 그들이 새로운 안주의 틀을 찾지 못하고 좌절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다시 그들이 거부했던 닭집으로 머리 숙이고 되돌아오고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사회변혁을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 무책임했을 자신에 대해 약간의 반성의 마음을 표하고 있긴 하다.

 

어쨌든 이 책에 대해 다른 의미의 또다른 투사(鬪士) 였던 마광수 교수[각주:1] 역시 한편의 글을 쓴 바가 있다. 외설논쟁과 함께 따라붙은 필화로 구속당하는 고초를 겪은 후 그를 외면하던 보수·진보를 막론한 방관적 지식인 집단에 대한 분노가 한 책을 쓴 동기가 되었던 <사라를 위한 변명>[각주:2]에 그 글이 나온다. 대체로 쾌락주의자인 마교수는 이교수의 반성을 환영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돌려서 자기 자랑"한다고 하는 것 같다며 그 반성이 미흡하다는 생각도 내비친다. 자신의 전공인 "노라"에 대한 이야기는 빠뜨린 대신에 <노잔유기(老殘遺記)>란 소설을 들며 은근히 청렴과 강직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역시 이교수의 반성이 마광수 교수 입장에서는 크게 미흡하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도 같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사람의 나름의 대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인형의 집>이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집을 떠난 "로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혹은 로라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어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원 글의 저자의 의미 어떻게 되었던 간에...

 

 

 

  1. 마광수 교수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진 문학자 중에는 한국에서는 꽤 읽어줄 만한 의미있는 글을 쓰는 종이를 그리 심히 낭비하지 않는 저자다. 한때 엄청난 관심과 인기를 끌었던 그의 "자유 성관(性觀)"이 요즘 외면 받고 마광수 이름이 이영희 교수와 대비되게 철저히 잊혀지는 이유는 누가모래도 IMF 이후 어려운 경제상황이라고 본다. 아마 1998년의 <자유에의 용기>가 실질적으로 그의 마지막 저서인 것 같다. 다만, 표절관련 불미스런 일에 연루된 것이 역시 자신에게 더 큰 짐이 되었다. 한편 외설 판정으로 받았던 그에 대한 부당한 사회의 박해에 비해 표절에 대한 처벌은 상대적으로 경미해 한국 사회의 전도된 상황을 다시 한번 보게 된 점이 씁쓸하다. 마치 제자백가에 "성가(性家)'라도 추가할 듯한 기세가 이렇게 끝나게 되어 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본문으로]
  2. 이 책에는 성이나 가족 같은 주제가 상당히 많다. 페티쉬라든가 가족중심주의를 버리고 독신도 생각해 보라든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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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chopenh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