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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

노무현 대통령 양아치 시절

 


노무현 대통령 고백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는 본인 스스로의 정치입문전까지의 삶에 대한 고백이 있는데 대체로 자랑스런 일보다는 부끄러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많다.

공부는 잘하는 반장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인한 구차한 행색에 불만이 많은 그는 4학년 때는 좀 어수룩한 아이의 반짝반짝한 필통과 자신의 찌그러진 필통을 바꿨다가 급우들의 비난을 받은 것을 두고 "공인(?)으로서의 도덕성에 관한 첫 심판을 경험"했다고 썼다. 부산상고 진학후는 2학년이후는 머리를 안 각이려 시험 시간에 도마을 치는 등 얼렁뚱땅 생활하다가 어망회사에 취직했다가 일찌감치 때려쳤다고도 한다. 노가다 생활도 했었는데 그 때 생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맨날 모였다하면 화투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이다. 옛날 누굴 두들겨 팬 이야기 여자 겁탈한 이야기, 일 저지르고 도망친 일 등등 ……. 모여 앉아 궁리하는 거라고는 어떻게 하면 공사장의 모터나 철근, 자재 같ㅇ느 걸 빼내 나가 팔아먹을까 하는 것들이다.
한 번은 일터로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음담패설로 희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들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욕만 됫박으로 얻어먹고 코가 납작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분풀이할 궁리 끝에 다음 날 아주머니들이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를 향해 나란히 줄지어 서서는 바지춤을 내렸다. 그리곤 단체로 오줌을 갈겨댔다. 밥먹고 생각하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었다.
그 뒤 군대를 갔는데 군복을 입혀 놓으니 또 그 지경이고,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어떻게 농땡이를 부릴까 궁리만 한다. 아무 길거리에서나 오줌을 누고, 긑나면 그냥 집에 가도 될 걸 술집에 몰려가 한 잔씩 해야만 하고, 그러다 지나가는 여자나 희롱하고……. 옷과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모양이다.
(중략)
버려진 사람들에게 도덕적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신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뚜렷한 의식과 자부심이야말로 모범적 행동의 기초가 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을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관심과 배려에 달려 있지 않을까.


이런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훗날 그 어렵디 어렵다던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책에는 당시 <고시계>에 실린 수험기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말에도 아예 뜻을 버리지 않고 <고시계> 한 권을 사두었고 군대가기 전 예비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니 완전히 농땡이 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68-71년 군대에서 영어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그 다지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불과 4년만에 서울 법대생에게도 버겁다는 사법시험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 아무리 그가 머리가 좋다지만 공부에서 진짜 손을 뗀 날들은 그리 많지 않은가 본다. 이런 것은 감춘 채 그냥 농땡이로 고등학생 시절 내내 일관하다 한순간에 만회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높은 뜻을 품고도 청소년 시절 공부를 게을리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칫 주목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한다. 괜히 노무현 대통령 같은 머리좋은 사람 흉내내려다 큰 좌절과 돌이킬 수 없는 역경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재단 제공

사진: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30215165208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