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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의 한 장면 - 그라쿠스 의원의 게임혐오증

 

벌써 나온지 10년이 지난 영화지만 참 보면 볼 수록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스펙타클한 면에서, 지금 한국영화도 많이 발전했다지만 도저히 이 수준까지는 넘볼 수 없는 벽처럼 트껴진다. 영화의 배경은 다섯 명의 현제(賢帝)가 잇따라 즉위하며 로마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끈 때 그 다섯 황제의 마지막에 철인(哲人) 군주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세상을 버린 직후의 일이다. 아들로서 그의 어진 성품을 물려받지 못한 코모두스는 원로원을 무시하며 폭정과 독재를 시작하면서 민중에게 검투게임 등 각종의 스펙터클과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 한다.

 

따라서, 원로원에서 고대 공화정의 기풍을 사랑하고 독재를 미워하는 의원 그라쿠스(Gracchus)는 이런 게임을 혐오한다. 그래서 동료 가이우스에게 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며 신임 황제 코모두스(Commodus)를 비판한다.

 

"내 생각엔 그가 로마를 아는 것 같군. 로마는 군중 덩어리지. 그는 그들을 마법을 불러들여 흩뜨려 놓으려는 거야. 그가 자유를 빼앗는데도 함성만 질러대잖아. 로마의 뛰는 심장은 원로원의 대리석 바닥에 있는게 아니라 콜로세움의 모래밭에 있어. 그들에게 죽음을 주어도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를 사랑하게 되지."

 

 

황제가 로마시민들 위해 제공한 검투경기에 앞서 빵을 나누어 주는 영화의 한 장면

 

물론 그의 이런 게임혐오증은 검투사로서 자신과 정견을 같이 했던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이 나타나 대중의 인기를 모으면서 깨긋이 사라진다. 마침내 그는 이 야만적 경기장의 귀빈석(원로원 좌석)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다. 그는막시무스의 귀환을 전기로 해서 코모두스의 폭정을 꺽고 원로원을 다시 로마 정치의 중심으로 돌려놓을 의욕에 불타 막시무스가 벌이는 검투시합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이렇게 코모두스를 향한 반독재 연합이 서서히 이루어 지는 것이다.

 

모처럼 검투장을 찾은 그라쿠스 의원에게 "당신이 이런 저속한 민중들의 장소에 올 줄은 몰랐다"며 비꼬는 인사를 건네는 코모두스의 측근 팔코 의원

 

빵과 서커스에 관해서 사실을 말하자면, 명목상 주권자였던 로마의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당연한 관심과 불만을 망각케 하는 대표적인 우민화 수단이었다. 허나, 그러한 정략적 의도와 별개로 로마 원로원 의원이 이런 게임을 혐오했다는 것은 그리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다. 훗날 그것이 인도적인 관점에서 비판되었으며 철인 황제인 아우렐리우스 조차도 그렇게 보았지만, 로마의 원로원 의원 혹은 유력자나 특히 관직을 맡고 있는 자들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 뿐 아니라 사재(私財)를 털어서라도 민중에게 게임을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었으며 후대의 황제의 독주가 두드러질 수록 그들의 역할은 점점 현실정치보다는 이런 여흥 제공 쪽의 비중이 높아갔다. 그리고, 검투경기는 단순히 민중들이 열광할 뿐 아니라 로마의 고래의 전통으로서 원로원 의원들에게도 존중되었다.